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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아이팟 터치가 보여준 가능성과 공포

부처핸썸 2007. 9. 20. 09:31
아이팟 터치가 보여준 가능성과 공포
2007년 9월 19일(수) 12:05 [Buzz]

지난 주 나는 애플의 신형 아이팟인 아이팟 터치의 발표를 지켜보며 애플의 기술에, 스티브 잡스의 쇼맨십에, 그리고 그것에 열광하는 전 세계에 경악했다. 아이팟 터치는 아이폰에서 전화 기능만 빠진것 같은 느낌의 기계다.

블루투스 기능이 빠지긴 했지만 무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 사실상 전화가 되지 않는 것만 빼면아이폰과 큰 차이가 없는 제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팟 터치의 화제성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이들이 애플의 휴대폰 시장 진입을 두려워했고, 왜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의 등장이 위협적인 사건인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애플의 행보가 무서운 이유는 아이폰이 발매 2달만에 100만대라는 경이적인 판매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번에 발표된 아이팟 터치와 아이폰의 운영체제가 똑같다는 점이다.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는 디자인도 비슷하지만 인터페이스와 운영체제도 동일한 방식을 사용한다.
어떠한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기반, 즉 플랫폼을 가져간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가져가겠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라는 플랫폼을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시간이 걸렸는가, Web2.0이라는 미래지향적인 플랫폼이 정착되기 위해 지금 얼마나 많은 암초들에 걸려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하지만 애플에게 있어서는 지금 이것이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애플은 거대한 음악 창고라고 할 수 있는 아이튠즈와 이 아이튠즈를 이용하기 위한 휴대용 MP3 플레이어 아이팟으로 전 세계 MP3 시장의 과반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제 아이팟은 동영상도 되는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다. 그런데 이 아이팟에서 무선 인터넷과 전화가 된다면? 아이팟의 사용자는 휴대폰을 바꿔야 할 때 가장 먼저 어떤 제품을 고려할까?

사람은 결국 써본 제품을 계속 찾기때문에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더욱 자연스럽게 하는 장치는 두 제품의 운영체제를 통일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에 사용된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규격을 공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폰의 운영체제를 채용한 수많은 호환 제품들이 나온다면? 아마도 애플은 휴대용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PC 시장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애플의 운영체제 위에서 서비스 되는 수많은 콘텐츠들을 생각해보라.

아이튠즈를 통해 이미 막대한 콘텐츠를 확보한 애플을 이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애플이 진정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이폰에 대항하기 위해 ‘크루아 운영체제’ 등이 개발되고는 있지만 단순히 운영체제를 바꾸는 것 만으로는 아이폰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한 가지 다른 사례를 이야기 해보자. PSP를 사용하다가 PS3를 구입한 사람이라면 처음 화면을 본 순간 매우 반가운 화면을 만나게 된다. PSP에서 익숙해진 횡으로는 카테고리, 종으로는 콘텐츠가 표시되어 있는‘크로스 미디어 바(통칭 XMB)’의 초기 화면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XMB는 상하좌우 이동과 선택 버튼만으로 그 기기의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소니 특유의 유저 인터페이스다.
 
PS3에 사용되고 있는 소니의 크로스 미디어 바(XMB). XMB는 게임기 뿐만 아니라 녹화기와 TV에도 사용되고 있다. 소니는 모든 제품의 조작 체계를 XMB를 이용해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XMB는 쿠다라기 켄 전 회장이 의욕적으로 개발에 참여했던 PSX라는 제품에 처음 채용되었다. PSX는 게임기인 PS2와 방송 녹화기 그리고 DVD 플레이어를 하나로 통합한 제품이었다. 여기에 각 기능과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XMB였다. 이 XMB는 이후 PSP에 채용되어 크게호평을 받았고, 이후에는 점점 그 적용범위가 넓어져 지금은 소니에서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디지털 가전기기에 사용되고 있다.

PSP와 PS3와 같은 게임기는 물론, 디지털 방송 녹화기인 ‘스고로쿠’, 디지털 TV인 ‘브라비아’, 노트북 ‘바이오’, 심지어는 소니엘릭슨의 휴대폰에까지 채용되고 있다. 사실 이 XMB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XMB는 서서히 무섭게 그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필자의 경우도 일본에 거주할 때 처음구매한 녹화기가 A사의 제품이었다. 그러나 인터페이스가 불편해 사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소니의 스고로쿠라는 녹화기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XMB의 편리함 때문에 이후에는 TV도 휴대폰도 XMB가 도입된 제품을 가장 우선 고려하게 되었다.

사람을 물건을 살 때 성능이나 디자인 그리고 가격 등을 고려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편리함도 크게 고려한다. 성능과 디자인, 가격 등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면 구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편리함이 아닐까?

그리고 이미 자신이 사용하던 익숙함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소니가 XMB라는 UI를 플랫폼화 하여디지털 가전기기의 조작 방법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이유는 이런데 있다. 소니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XMB라는 표준을 만드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직 우리의 현실은 많이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휴대폰이라고 해도 하드웨어 규격은 고사하고 운영체제, 심지어는 버튼 모양 하나 통일된 규격이 없다.

UI는 휴대폰마다 따로 제 각각이며 심지어는 제조사나 이통사 조차도 자기네 휴대폰의 스펙 정보를 모두 갖고 있지 않다. 비단 휴대폰 시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TV나 녹화기는 고사하고 LCD 모니터의 OSD조차도 같은 회사의 제품이라도 모델마다 제 각각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제는 우리도 보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단지 좋은 제품, 앞선 기술을 빨리 만들어 내는 것 이상으로 플랫폼을 가져가는 게 필요하다. 애플의 아이폰용 OS X나 소니의 XMB 같은 것을 우리의 삼성이나 LG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앞으로의 경쟁력이니까.

김상하 IT칼럼리스트(akachan@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