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마케팅(demarketing)

 

저 자  김민주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시카고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은행과 SK그룹, SK(주)를 거치며 금융 및 실물분야의 리서치 업무와 신규사업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SK계열사 (주)더컨텐츠컴퍼니 대표이사, (주)골든민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2002년 말 현재 (주)리드앤리더 대표이사로 비즈니스 사례 중심의 지식 포탈사이트 emars.co.kr을 운영하고 있다.

 

Short Summary

우리는 자기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안정을 제공해 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상위 20%의 고객이 기업 수익의 80%를 올린다는 '80/20 법칙'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객들을 좀더 세분화해 보면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상위 20%의 고객이 수익의 80%를 만들어내며, 그 바로 아래 40%의 고객은 수익의 30%를 창출한다. 반면 하위 40%의 고객은 이익은커녕 오히려 수익의 10%를 까먹는다. 따라서 VIP들을 관리하는 귀족마케팅과 함께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전략이 바로 하위 고객들을 잘라내는 디마케팅이다. '디마케팅(Demarketing)'은 필립 코틀러가 1971년에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정기적으로 고객과 건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기업이 수요를 의도적으로 줄이려는 마케팅 활동을 말한다.

 

'선택과 집중'의 디마케팅 전략은 시장이 불황기에 접어들었을 때나 포화 상태에 이른 저성장 시대에 더욱 효과적이다. 바로 그 때문에 최근 들어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윤의 극대화라는 목표에 반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고 수익성을 높임으로써 이윤 향상에 기여하는 전략이다.

 

이 책은 디마케팅의 정확한 개념 소개와 함께 실제로 국내외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디마케팅에 성공하여 수익을 향상시키거나 기업 이미지를 높였는지,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기업들이 각기 다른 목적에서 어떻게 디마케팅을 응용하여 성공했는지 소개한다. 디마케팅에 관한 유의사항과 저자의 전망도 덧붙였다.

 

차 례

책을 시작하면서

 

1장 디마케팅의 개념과 이론

1. 디마케팅이란 무엇인가?

2. 디마케팅의 사회경제적 배경

3.왜 디마케팅인가

4. 디마케팅의 유형

5. 디마케팅의 대상과 방법

 

2장 수익성 제고를 위한 디마케팅

1.은행의 디마케팅

2. 신용카드사의 선택과 집중

3. 인터넷 업체의 최후의 선택

4.홈쇼핑 업체의 디마케팅

 

3장 공익형 디마케팅

1. 비만 논쟁에 맞선 프랑스맥도날드의 선택 - "어린이는 일 주일에 한 번만 오세요."

2. 한국네슬레의 윤리적 디마케팅 - "아기에게 분유 먹이지 마세요."

3. 사회적 비난을 잠재우기 위한 강원랜드의 노력 - "도박중독센터에서 무료로 상담해 드립니다."

4. 기타 공익적 디마케팅

 

4장 기타 디마케팅

1. 강제적 규제에 의한 디마케팅

2. 수급조절을 위한 디마케팅

3. 1% 이미지를 위한 디마케팅

4. 외견적 디마케팅

 

5장 디마케팅 제대로 이해하기

1. 디마케팅에 관한 선입견 바로잡기

2. 고객 중심 디마케팅을 위한 유의사항

3. 디마케팅의 전망

 

1. 디마케팅의 개념과 이론

디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디마케팅이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이 고객과 건실한 관계를 유지·발전시켜 나가려는 목적에서 수요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마케팅 활동으로 감소하다, 줄이다라는 뜻의 decrease의 접두사 de와 marketing의 합성어이다. 이 개념은 세계적인 마케팅 대가 필립 코틀러와 시드니 레비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는데, 이들은 초과수요나 기업이 원치 않는 과도한 수요가 발생할 경우 일시적이거나 장기적으로 전체 혹은 일부 계층의 고객 수요를 줄이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을 디마케팅이라 불렀다. 그때까지 기업은 항상 수요를 늘리는 데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여겨지던 상황에서 기업이 앞장 서 수요를 줄이기 위해 마케팅 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이 역발상적인 개념은 당시 일약 선풍을 일으켰다.

 

우리는 보통 마케팅을 협의로만 해석하여 초과공급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수요를 늘릴 궁리만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공급 과잉이 염려될 정도로 기업의 숫자와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 서비스가 다양해진 결과 이제 시장의 주도권은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시장 상황에서는 초과수요가 발생하면 반드시 전략적으로 그 수요를 조정하거나 줄여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도 모두 마케팅에 포함되는 활동인 것이다. 수요를 줄이기에 일시적으로 매출액은 줄어들지만, 기업의 수익성이나 경쟁력은 오히려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기업이 원하는 공급 수준 이상으로 수요가 발생할 경우 이를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줄임으로써 비용 절감, 수익성 향상, 이미지 제고 등의 효과를 노리는 기업의 마케팅 활동이 바로 디마케팅이다.

 

우리 나라에서 디마케팅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된 배경에는 불안한 경제상황이라는 악재가 버티고 있다. 우리 경제는 1997년의 IMF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약 3년간 회복세에 들어섰으나 뒤이은 2년 동안 국민 대부분이 명품과 신용카드 열기로 대변되는 이상 소비과열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난 덕분에 유통업체, 전자상거래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카드업계와 은행권도 10조 원에 달하는 순익을 거두자 신용카드로 인한 소비 지출의 확대가 자연스럽게 생산과 투자의 확대로 이어져서 이것이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했다.

 

하지만 소득이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카드를 남발하자 신용카드로 인해 가계 부실이 빚어지면서 우리 사회 계층의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휘청거린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신용카드 대란 이후 신용불량자가 대거 양산되면서 그 층이 더욱 얇아졌고, 이미 저소득층은 생필품 이외에는 소비를 할 여력이 없어졌다. 반면에 고소득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더욱 더 부를 쌓는 소비계층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자 기업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디마케팅에 뛰어들게 되었다. 어떤 기업도 비용만 발생시키는 고객에게 계속 서비스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디마케팅의 유형

· 수익성 제고형

매출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고객을 관리하기 위해 시행하는 디마케팅이다. 은행들이 예전과는 달리 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해 창구를 방문하는 고객들을 홀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 공익소구형

특정 상품에 대해 정부가 규제할 가능성이 크거나 사회단체의 압력, 또는 불리하게 형성된 사회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기업 측에서 먼저 자발적으로 수요를 억제하는 경우이다. 적당히 절제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소비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술, 담배, 신용카드 등에 관련된 업체들이 서둘러 디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는 데에는 바로 이런 사정이 있다.

 

· 규제 회피형

정부가 공정한 시장 거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규제를 가할 때 해당 기업이 방어 차원에서 사용하는 마케팅 방법이 바로 규제 회피형 디마케팅이다. SK텔레콤이 017 신세기 이동통신과 합병할 당시 정부는 합병한 후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회사 측은 일정 기간 동안 신규 고객 모집을 중지했으며, 이를 통해 SK 측은 정부 규제의 칼날을 피하면서 동시에 불량 연체고객의 해지를 유도하는 대단히 고차원적인 디마케팅을 함께 시행하여 수익성을 올리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 수급조절형

설비투자의 한계 때문에 갑작스럽게 늘어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공급을 늘리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므로 결국 일시적으로 수요를 줄이는 것이 수급조절형 디마케팅이다. 피크 타임에 몰리는 수요를 다른 장소나 다른 시간대로 이동, 분산시키는 것도 이 유형의 디마케팅에 속한다.

 

· 이미지 제고형

타겟 고객을 확실히 정해놓고, 그 사람들만 구매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소비자들에게는 정보를 차단하는 디마케팅이다. 명품업체들이 제품의 희소성 유지와 이미지 고급화를 위해 TV 등의 대중매체에서 광고하지 않고 일부 계층만이 구독하는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서만 홍보하는 것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 외견형

얼핏 보기에는 디마케팅이지만 사실은 적극적인 마케팅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즉, 고객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많은 고객을 모으기 위해 펼치는 마케팅이다. 예를 들어 골동품 가게에서는 골동품을 깨끗하게 정돈하지 않고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진열해둔다. 골동품점 주인은 쓰레기 더미에서 뭔가 값비싼 물건을 발견할 것 같은 기대감이 있어야 고객을 끌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음식점이 인기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손님이 매장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도록 하는 것도 외견형 디마케팅에 속한다.

 

 

 

 

2. 수익성 제고를 위한 디마케팅

홈쇼핑 업체의 디마케팅

유통업체들은 일반적으로 디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구입하지 않는 고객일지라도 언제, 얼마나 구입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섣불리 디마케팅을 하다가 고객에게 나쁜 인상을 주게 되면 그 입소문의 역효과는 매우 막강하기 때문에 신중에 또 신중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홈쇼핑 중에서도 주로 카탈로그를 이용하여 영업하고 있는 업체들과 안정기에 접어든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들은 조심스레 디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돈이 안 되는 고객에게는 판촉 우편물인 카탈로그를 보내지 않는다든지 상습적인 반품족은 특별 관리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실시되는 정책이다. 디마케팅을 통한 홈쇼핑 업체들의 치열한 알짜고객 잡기 경쟁을 들여다보자.

 

홈쇼핑 업체들도 초기에는 카탈로그를 얼마나 많이 발행하는가를 놓고 서로 세력 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홈쇼핑 시장이 성숙 단계에 진입한 상황에서 무작정 카탈로그를 보내고 보자는 식의 마케팅 방식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그동안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웬만한 업체들은 우량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을 선별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이제 카탈로그를 차별적으로 발송하고 있다. 성숙 단계의 시장에 적합한 밸류(Value)를 중시하는 디마케팅을 시작한 셈이다.

 

예를 들어 업계 선두인 LG홈쇼핑의 경우 카탈로그 발행부수를 월 300만 부에서 250만 부로 줄였다. 이제까지 한번도 구매하지 않은 고객에게는 더 이상 보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업체의 경우 상위 30%의 고객들이 총매출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카탈로그도 기존 것보다 페이지 분량도 적고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을 실은 신규고객용, 각종 쿠폰을 함께 발송하는 우수고객용으로 별도 제작한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홈쇼핑 카탈로그에도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그 밖에도 카탈로그를 통한 매출 비중은 점차로 줄여나가면서 인터넷 쇼핑몰로 고객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겠다는 SK디투디, 아예 카탈로그 발송을 전면 중단하고 온라인 쇼핑몰에만 집중하겠다는 한솔CNS와 같은 업체들도 등장하고 있다.

 

홈쇼핑 업체들에게는 반품을 일삼는 일명 반품족이 큰 골칫거리이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특히 변심에 의한 반품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객들의 충동구매의 비율이 높다는 뜻인데, 그 원인을 떠나 업체 입장에서 반품의 대량 발생은 그로 인한 금전적 손실이 막대하다. 2차례에 걸친 배송비 부담은 물론이고, 반품된 제품을 다시 팔 수 없게 되어서 발생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 매출증가율도 점차 둔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규모보다는 수익을 따지는 분위기가 확산되어 홈쇼핑 업체들도 예전처럼 반품을 잘해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주문과 반품을 반복하는 고객들은 일단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업체마다 특별히 관리한다. 또한 과거 구매내역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별다른 수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조용히 디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3. 공익형 디마케팅

한국네슬레의 윤리적 디마케팅 - "아기에게 분유 먹이지 마세요."

모유 먹이기 캠페인은 대부분이 의료단체나 소비자보호단체 혹은 각종 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나서서 활동을 해나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나라에서는 분유회사들의 과도한 마케팅과 물량 공세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위스에 본거지를 둔 거대 다국적 식품회사인 네슬레는 자사 제품을 되도록 사용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모유 먹이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135년간 영·유아식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생산해온 네슬레는 1960년대 들어 선진국에서 출생률이 급격하게 하락하자 출생률이 높은 제3세계로 판매 지역을 대폭 확대했다. 그런데 제3세계 시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이 처방대로 분유를 조제하여 아이들에게 먹이지 않아 사상자가 발생하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과도하게 물과 희석하거나, 심지어는 오염된 물을 사용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품의 올바른 사용법을 소비자에게 교육시켜야 하는 책임을 망각한 네슬레는 1970년대 들어 분유 마케팅을 자제하라는 사회적인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네슬레는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문제점에 적극 대처하거나 관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7년, 미국의 INFACT라는 단체가 모든 네슬레 제품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점차 그 파급 효과가 커져서 1982년, 세계보건기구가 채택한 모유수유 및 조제분유 마케팅에 대한 국제 강령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네슬레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보건기구 및 관련 국제기구의 권고안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윤리적·공익적인 디마케팅을 시작하게 된다. 한국네슬레는 2001년 조제분유제품인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모유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아식 제품 겉포장에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은 모유입니다. 성장기용 조제식을 먹이기 전에 의사나 전문가와 상의하세요.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판매하고,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판넬을 제작하여 소아과 병원에 비치하기도 했으며, 소아 담당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모유의 중요성에 관한 강의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한국네슬레의 사례는 공익적 차원에서의 윤리경영 및 디마케팅과 관련하여 가치 있는 사례이다. 디마케팅과 관련해서는 먼저 디마케팅을 시행할 때는 무엇보다 경쟁업체보다 한 발 앞서 시행해야 한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네슬레의 모유 먹이기 캠페인은 해외에서는 선도적인 공익 운동으로 주목받아 회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국내에서는 경쟁업체에 비해 늦었기 때문에 그 주목성과 차별성이 많이 퇴색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시장에서의 기업의 위상을 적절히 고려하여 디마케팅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1,2위 업체의 경우는 디마케팅을 통해 더욱 자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후발 주자의 경우에는 먼저 공격적으로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혀 나간 다음에 디마케팅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네슬레의 경우 국내 시장을 이미 토종 기업들이 선점한 상황에서 충분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공익마케팅을 실시하여 경영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4. 기타 디마케팅

외견적 디마케팅

디마케팅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인 경우가 있다. 바로 외견상 디마케팅이 이에 해당하는데, 업체가 고객이 더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더 오기를 바라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다.

 

엄격한 품질 관리와 맛을 강조하는 유명 제과점일수록 오후 늦은 시각이 되면 판매할 빵이 부족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리 늦지도 않은 시각인데 벌써 어떤 빵은 동이 나 구경조차 할 수 없다면 고객들은 그 제품이 굉장히 인기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인기 있는 빵은 고객이 알아서 서둘러 사가게 되고, 동시에 신선한 빵을 만들어 공급하는 업체라는 좋은 이미지까지 구축할 수 있다. 이들 업체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보다 조금 적게 공급함으로써 겉으로는 마케팅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와 반대인 것이다.

 

지금도 약국에서 팔리고 있는 박카스는 요즈음 기준에서 보면 촌스러운 병 모양을 하고 있다. 40여 년의 제법 오래 역사를 지닌 이 제품의 디자인을 새롭게 바꿀 법도 하지만 업체는 옛날의 용기를 고수한다. 바로 외견상 디마케팅 전략 때문이다. 사람들이 박카스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만큼 오래된 음료임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몇 해 전 다소 뭉툭한 모양의 바나나 우유의 용기를 날씬하고 세련된 모양으로 새롭게 바꾼 빙그레의 시도가 실패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들이 새 용기에 담긴 바나나 우유를 평소에 익숙하게 여기고 자주 먹던 제품과 전혀 다른 상품으로 인지함에 따라 매출에도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제품들의 포장에 있어서 외견상 디마케팅은 필수적인 전략이다.

 

삼청동에는 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그러나 이 집의 팥죽은 첫째로 잘하는 집이라 해도 될 만큼 맛이 있다. 하지만 이 음식점은 제대로 된 큰 간판도 없고, 장소가 넓은 것도 아니다. 가게 안도 1970년대 초반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낡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윙윙 선풍기가 돌아가고 의자도 삐끄덕거린다. 이 가게의 이런 특징들은 모두 외견적 디마케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오래되고 낡은 인테리어는 그 자체가 가게의 차별 포인트가 된다. 독특함 때문에 오래 기억되고, 입소문을 타게 되는 것이다. 오래된 단골들에게는 추억거리를 제공하고, 새로 방문하는 고객에게는 깊은 인상과 함께 그렇게 오래될 정도로 장사를 계속할 수 있다면 음식 맛이 좋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준다.

 

이런 외견상 디마케팅이 얻고자 하는 효과는 우선 남들처럼 하지 않는 데서 오는 차별화이다. 분명 이런 전략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 디마케팅 전략은 무엇보다도 제품이나 서비스에 자신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외견상 디마케팅은 손님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 디마케팅 제대로 이해하기

고객 중심 디마케팅을 위한 유의사항

· 고객 평가를 정확하게 하라

마케팅은 80/30/-10 법칙(상위 20% 고객이 수익의 80%를 만들어내고, 40%의 고객은 수익의 30%를 차지하며, 가장 하위 40%의 고객은 오히려 수익의 10%를 까먹는다는 내용)에 따라 고객을 분류하는 데서 출발한다. VIP 마케팅으로 특별히 관리해야 할 상위 고객이 누구인지, 비용만 발생시키고 수익 확보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고객들은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디마케팅에서 특히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이 다른 업계에 비해 디마케팅을 일찍부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 1인당 발생하는 손익을 수치적으로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카드사들도 고객의 신용정보와 거래실적 등을 기초로 신용평점을 매기거나 수치로 등급화하여 디마케팅의 대상을 구분하는 것이 타업종에 비해 쉽다.

 

기업이 디마케팅을 위해 고객 평가 작업에 착수할 때 일반적으로 최근에 고객이 자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얼마나 구매하고 이용했는지를 조사하게 된다. 구매량에 따라 우량 고객과 아닌 고객으로 간주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다. 고객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회사의 제품을 사기 때문에 구매액이 줄어든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최근의 구매 실적과 단편적인 자료만을 가지고 고객을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물론 고객의 기여도까지 정확하게 산출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섣부르게 디마케팅을 실시한다면 회사의 잠재 고객을 미리 차단해버리는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결정이 될 수도 있다.

 

고객들의 기여도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양적 지표 외에도 개별 고객들의 이익 기여도를 정밀하게 분석한 질적 지표에 의거해야 한다. 고객 평가가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비록 지금은 우수 고객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량 고객도 아닌 고객들 중에서는 미래에 최우량 고객이 될 수 있는 고객들이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고객들을 다 잘라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사례 : 체이스 맨해튼 은행은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단지 고객 개인별이 아닌 가구별로 구축함으로써 고객 각자의 가치를 보다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또 이로 인해 고객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반응해온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고객들의 욕구를 먼저 찾아내는 능동적인 사업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또한 많은 비용을 들여 대량으로 마케팅하던 기존의 운영방식을 저비용이면서 적중률이 높은 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고객의 불만을 관리하라

디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고객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조심스럽게 시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유통업이나 서비스업에서는 더욱 더 조심스럽게 디마케팅을 시행해야 한다. 자칫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전체 사업이 크게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디마케팅하되, 선택된 고객에 대해서는 철저한 서비스가 수반되어야 한다.

 

· 기업의 입장만 고려한 성급한 디마케팅은 금물이다

디마케팅을 실시하려면 먼저 고객을 정확히 평가해서 누가 진짜 수익을 주는 고객인지를 판단하는 작업이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디마케팅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고객의 불만이나 기업 이미지 실추 등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해결책도 미리미리 마련해 놓아야 한다.

 

· 프리챌의 기업 위주 디마케팅

기업의 어려운 사정만 고려하여 정작 중요한 것을 못 보고 성급하게 디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은 지나치게 기업 위주의 발상이요, 전략이다. 기존 회원들에 대한 고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무료 커뮤니티를 표방하며 많은 회원들을 모집했던 프리챌은 이를 번복하며 유료화를 선언했으나 유료 서비스의 범위나 조건이 수시로 바뀌며 혼선을 빚은 결과 2002년 11월 커뮤니티 유료화를 실시한 후로 110만 개에 달하던 커뮤니티의 숫자가 20만 개까지 줄었다. 결국 이 업체는 유료화 선언 7개월만에 다시 무료화한다고 발표했지만 예전의 위상을 되찾지는 못했다. 2003년 10월 말, 프리챌의 하루 방문자 수는 100여 만 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절반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업체는 지나치게 기업 위주의 입장에서 극단적이고 일관성 없는 디마케팅을 실시함으로써 너무나 많은 것을 잃은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반면 국내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한메일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는 디마케팅의 하나로 프리미엄 메일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것은 무료로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기존 회원이 일정 요금을 추가로 내면 메일 용량을 늘려주고 갖가지 부가 서비스도 제공해주는 등 자연스럽게 이들을 유료 회원으로 유도하는 제도이다. 이 방식은 고객이 스스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위주로 진행되었던 프리챌의 전략과는 사뭇 다르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이와 비슷하게 수익성 제고를 위해 불량 고객들을 제거하는 디마케팅 전략이 광범위하게 시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디마케팅의 이득과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난 후에 섬세하고 신중하게 시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 이미지 관리와 디마케팅을 병행하라

디마케팅은 그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기업 이미지 손상이라는 위험 부담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공익 마케팅이나 감성 마케팅을 병행하면 이미지 손상의 위험을 상당 부분 상쇄시킬 수 있다. 국민은행이 현장에서는 고객 차별화 정책을 냉정하게 시행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경제 마인드를 배양하고 건전한 소비 습관을 키워주자는 어린이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 한 미국 은행의 디마케팅 실패 사례 : 시카고의 한 은행은 돈이 안 되는 고객이 나타나 은행원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고객이 현금인출기를 이용하지 않고 창구에 직접 와서 현금을 인출하면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부담시켰다. 그러자 고객들의 불만이 커진 것은 물론이요, 신문에 이 사실이 크게 보도되었다. 은행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이 은행은 위기에 봉착했고, 이 제도를 없앤 후에도 이미 실추된 회사 이미지를 좀처럼 회복할 수 없었다.

 

· 필요 이상의 인센티브는 방해만 될 뿐

예전에 시티은행은 수익은 나지 않고 관리 비용만 드는 고객을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해당 고객들에게 계좌를 해지하면 선물을 주겠다는 편지를 발송했다. 그 결과 많은 고객들이 선물을 받으려고 계좌해지 신청을 했다. 창구 직원의 입장에서는 딱히 이것을 거부할 만한 이유도 대지 못해서 신청을 모두 받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때 해지한 고객의 상당수가 그 후에 다시 계좌를 열었다. 어느 곳이든 이런 얌체 고객은 있게 마련이지만 디마케팅을 시행하면서 고객들을 배려하기 위해 상당한 반대급부를 제공한다면 그 기업은 그 작업을 은밀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소란이나 업무의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피하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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