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 기사입력 2007-10-0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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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전지현이 오랜만에 ‘국내용 영화’로 돌아온다. 내년 설 개봉예정인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낙점작이다. 합작과 해외 프로덕션을 제외하고, ‘국내용 한국제작 영화’로는 2003년의 ‘4인용 식탁’ 이후 5년만이다.
미디어는 벌써부터 전지현의 오랜 연기력 논란 불식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연기력 논란 불식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기묘한 일이다. 전지현은 애초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연기력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이기 때문이다. ‘엽기적인 그녀’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사이 7년 동안, 전지현은 어느덧 ‘연기가 가능한 미모의 여배우’에서 ‘미모만 돋보일 뿐 연기력은 의심스런 여배우’로 변신해 있었던 셈이다.
결국 그 7년간의 커리어가 오류였을 뿐,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전지현이 본디 ‘걸었어야만 했던’ 노선을 회복한 것이라 봐야한다. 흔한 일이다.
비단 전지현만의 오류는 아니며, 극단적 미형(美形) 배우가 겪기 쉬운 딜레마에 속한다.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조차도 아니다. 이미지와 연기력 간 선후위 갈등이 빈번히 일어나는 영상매체 연기자라면 쉬 겪게 되는 일이다. 풀어 보면 이런 식이다.
극단적 미형 배우가 뜨는 방법은 한 가지다. 자신의 미모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미모를 상당부분 부정하고, 그를 통해 쌓여진 고정관념을 해체해야만 대중의 인정을 받는다. 흔히 말하는 식대로라면, ‘예쁠수록 망가져야 뜬다’. 일종의 충격효과다.
극단적 미모는 배우를 ‘아이콘’으로 만들어 버린다. 외모만으로 얻어지는 표상성이 배우로서의 기능성을 압도해 버린다. 그러나 아이콘의 수명은 짧다. 본래 이미지란 쉴 새 없이 교체되며 트렌드를 탄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본연 역할’인 배우로서 기능성을 다소 과장시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기능성을 과장하다 보면 표상성을 거칠게 파괴하는 작업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망가지는’ 콘셉트가 남는다.
그러나 일단 ‘망가져서’ 뜨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니, 달라져 ‘보인다’. 연기력 이야기는 금세 사그러든다. 대신 미모가 한층 더 부각된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아이콘성이 돋보여져 각종 지면과 CF에서 환영받는다. 이쯤 되면 배우도 착각하기 쉽다.
자기 아이콘성이 이제 확실한 대중적 기반을 갖춰 그것만으로 승부해도 무리 없다는 판단에 이른다. 위험하게 연기력 승부로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 것보다, 잘 가공된 이미지만 팔아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는 것이 더 안전하게 여겨진다. 상업성도 고스란히 유지되고, 오히려 한류 붐까지 감안한 초대형 프로젝트 참여로 고급화 콘셉트도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것이 틀렸다. 배우의 아이콘성은 그(또는 그녀)가 콘텐츠 내에서 보여준 ‘이미지 파괴’에 기인해 돋보인 것이다. 기존 고정관념을 파괴했기에, 배우 본연 역할을 과장시켜 보여줬기에, ‘망가져’ 줬기에 오히려 미모가 더 빛을 발한 셈이다. 과일에 소금을 뿌리면 오히려 단맛이 더 강조되는 효과와 유사하다. 엇갈리면, 본래 장점이 증폭된다. 반면, 단맛에 단맛을 더한다는 단순 발상으로 과일에 설탕을 뿌리면, 설탕맛만 남게 되고 과일맛은 빛을 잃는다. 차라리 설탕을 집어먹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결국 콘텐츠의 ‘소금 효과’가 나오지 않는 이들의 아이콘성은 다시 사그러든다. 이를 만회하고자 내실 없이 부풀려진 콘텐츠만 찾다보니 대중신뢰도도 떨어져 콘텐츠 승부력도 약해진다. 허상만 남은 아이콘의 입지는 위태로워진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리세트’ 전략도 사실 꽤나 위험한 발상이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 이런 오류는 극단적 미형 배우에게 흔히 일어난다. 전지현과 흡사한 오판을 보인 예가 국내에도 많다. 대표적 경우가 장동건이다. 장동건 역시 전지현처럼 극단적 미모에 의해 아이콘화 된 경우였다. 그러나 아이콘성을 강조한 초기작들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미모는 화보 다운로드는 이룰망정, 콘텐츠를 팔지 못한다.
장동건도 결국 전지현처럼 ‘연기’로 떴다. 그것도 동일하게, 거친 기존 이미지 파괴로 떴다. ‘친구’에서, 장동건은 코미디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망가졌다’. 머리를 박박 밀고, 쇳소리 나는 쉰 목소리에, 거친 부산 말씨로 비속어를 퍼붓고, 무엇보다 ‘악역’이었다. 그 극단적 변신에 대중이 호응했다. 과일에 소금을 뿌리니 미모도 더 빛났다.
이후 행보도 전지현과 거의 일치한다. 초기에는 연기파 노선도 병행했다. 그래서 전지현은 ‘4인용 식탁’을, 장동건은 ‘해안선’을 선택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사실 그런 종류의 극단적 연기파 변신을 대중이 원한 건 아니었다. 중급 상업영화 내에서 연기로 자기 개성을 펼치길 기대했다. 그러나 장동건과 전지현은 여기서 블록버스터 노선을 선택한다. 연기력 승부의 위험성을 깨닫고, 아이콘성의 강화로 치달은 것이다. 나아가 한류 스타 위상을 업고 국제파 블록버스터로 향했다. 장동건은 ‘무극’과 ‘사막전사’로, 전지현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와 ‘데이지’로 합작영화에 진출했다.
‘무극’과 ‘여친소’, ‘데이지’는 모두 미진한 결과를 보였지만, 기이하게도 포부는 이를 넘어섰다. 둘 다 할리우드 진출로 더 크게 목표를 잡았다. 전지현은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를 택했고, 장동건은 제임스 선의 할리우드 프로젝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의 배우로서 이미지는 흐릿할 대로 흐려졌다. 대한민국, 아니 ‘아시아’ 최고 미남미녀라는 타이틀만 남았다. 아이콘성의 극치다. 실제 이들의 콘텐츠 성공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 시점에서, 한도 끝도 없이 인플레이션된 아이콘성에 먼저 위기감을 느낀 것은 전지현이다. 전지현은 ‘본래 위치’, 연기력을 시험할 수 있는 중급 상업영화를 택했고, 장동건의 차후 선택은 아직 미지수다.
이렇게만 보면 얼핏 필연적으로 진행된 커리어 공식처럼 보인다. 극단적 미형 배우의 ‘운명’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난 예도 있다. 동일 노선 내에서도 현명히 커리어를 관리해 인플레이션을 막고 내실을 기한 경우다. 차승원이 그 대표적 예가 된다.
차승원도 전지현, 장동건과 비슷한 딜레마를 겪고 있었고, 비슷한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신라의 달밤’에서 한번 ‘망가지자’ 떴다. 그러나 차승원은 여기서 아이콘성 강화로 가지 않았다. 섣불리 연기파 노선을 걷지도 않았다. 중급 상업영화 내에서 자신을 ‘띄워준’ 코미디 연기에 천착, 연속흥행 성공을 거뒀다. 어느 정도 대중신뢰도가 쌓여지고 난 뒤에야 영역을 확장해 드라마 연기를 선보였고, 역시 성공으로 이어졌다. 배우로서 역량과 티켓파워를 동시에 입증했다. 비록 근래 흥행 성적이 저조하긴 하지만, 이는 마케팅 불발과 시기적 악재일 뿐, 스타성과 대중신뢰도 면에서 타격을 입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차승원은 믿을만한 선택이고, 스타 파워로 콘텐츠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배우다.
물론 차승원의 경우가 모든 사례에 적합하지는 않다. 어찌 보면 운이 좋은 경우고, 연기 패턴도 분명해 이런 커리어 구축이 가능했다. 그러나 어찌됐건, 미형 배우들은 어떤 의미에선 조건이 좋다. 뜨긴 힘들지만, 한 번 뜨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유효기간이 다소 길다. 그 유효기간을 믿고, 보다 담대하며 정공법적인 승부를 걸어볼 필요가 있다. 긴 생머리를 고수하는 식의 뚝심을 연기 커리어에서도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일단 전지현의 ‘복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궁여지책이 아니라, 미래 커리어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