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2007-10-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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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민석씨(47·가명)는 요즘 한숨만 나온다. 일에 대한 열정과 투지로 동기들을 제치고 일찌감치 회사의 간부자리에 올랐으나 1년여 전부터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리는 등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30대 때만 해도 폭탄주 10잔 정도는 끄떡없이 마셨으나 요즘은 소주 몇 잔에도 인사불성이 되곤 했다. 집중력이 떨어져 회사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아내와의 잠자리도 신통치 않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매일 아침 거울 속에는 앞머리가 듬성듬성 빠져 있고 이마와 입가에 굵은 주름이 몇 개씩 있는 중늙은이가 있다. 웅담 등 몸에 좋다는 것을 다 찾아 먹어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는 ‘나도 이제 늙었구나’ 싶어 마음이 울적하다. 자신감도 상실했다. 김씨는 “누구나 언젠가 늙고 죽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50도 안 된 나이에 벌써 기력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충격을 받았다”며 “젊음을 되돌려 누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회춘(回春)을 가능케 한다는 호르몬 치료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인류의 오랜 염원 ‘불로장생’
‘불로장생’은 동서고금을 막론해 모든 인간의 염원이다. 불로초를 찾아오라며 3000명을 푼 진시황이나 젊고 싱싱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꿀과 우유로 목욕한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이 같은 인간의 염원을 잘 드러내는 사례다. 1930년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는 평생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가질 수 있는 꿈의 낙원, ‘샹그릴라(sangri-La)’가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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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지방클리닉에서 생체나이를 측정하고 있는 중년 여성. |
의료 및 과학의 힘을 빌려 인체의 시계를 잠시라도 멈추게 하려는 현대인의 몸부림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더불어 이런 현대인의 욕구에 맞춰 ‘안티에이징(Anti-aging : 항노화 또는 노화방지)’ 산업이 팽창하고 있다. 웰빙열풍과 맞물려 수년 전부터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문을 열고 있는 노화방지클리닉이 대표적이다. 수백 가지의 정밀검사를 통해 ‘개인별 맞춤식 노화방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연회비가 적게는 1500만 원, 많게는 3000만 원으로 일반 봉급생활자는 엄두도 내지 못할 고가 서비스지만 이곳을 찾는 발길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젊음을 돈으로라도 살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노화방지클리닉은 공통적으로 노화를 치료 가능한 일종의 ‘질병’으로 분류한다. AG클리닉 권용욱 박사는 “노화방지의학의 목표는 종교에서 말하는 영생을 얻거나 노화를 완전히 막는 데 있지 않다”며 “막을 수 있는 것은 미리 막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늦추어서 수명을 연장시키고 최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해 삶의 질을 높이면서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까지 밝혀진 모든 방법을 총동원할 경우 10~20년은 젊어지고 또 그만큼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노화방지클리닉의 주고객은 40~60대의 중장년층이다. 국내에는 현재 세계적 노화방지 전문 클리닉으로 프랑스에 본사를 둔 라끄리닉드파리와 미국의 팜스프링스 장수의학연구소의 한국 지사 격인 팜스프링스서울의원도 문을 열었다. 라끄리닉드파리 신라호텔점 김명신 원장은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더 이상 생성하지 않는 몸을 그대로 방치하면 이것이 병이 되고 병을 방치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며 “노화방지클리닉은 단순히 약처방만이 아니라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젊음과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코스메슈티컬’ 시장 가파른 성장세
의료계는 국내에서 노화방지 시술을 하는 병·의원을 1000여 곳으로 추산하고 있다. 2001년 30여 곳에 불과했던 것이 5년 만에 3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특히 호르몬 치료는 노화방지클리닉을 표방한 의원들뿐 아니라 산부인과, 비뇨기과, 피부과, 내과, 성형외과 등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대한여성비만노화방지학회 홍영재 회장에 따르면 호르몬 시장 규모만 해도 지난해 500억 원대에 달한다. 2000년 300억 원대로 추산됐던 호르몬 시장 규모가 매년 10~15%씩 성장한 것이다. 실제로 60대임에도 20대처럼 치장하고 다니는 할리우드 스타 골디 혼은 물론 국내 40대 영화배우 ㅂ씨를 비롯해 적잖은 연예인이 호르몬 보충 요법 등으로 젊음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르몬 요법은 그 효능 및 부작용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면 노화 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의사는 호로몬 치료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암이나 심장병 같은 치명적 질환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들도 나와 있다. 하지만 호르몬 요법뿐 아니라 태반주사 등 각종 처방은 21세기 한국에서 노화 방지라는 이름으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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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호르몬 주사제(오른쪽)와 각종 비타민제. |
지난 3월 말 BBC-2TV의 과학프로그램 ‘호라이즌’을 통해 주름살을 펴는 데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진 저가 화장품 ‘No.7크림’을 둘러싼 광풍은 동서양을 막론해 젊음을 추구하는 세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4년부터 판매돼 왔지만 그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제품은 ‘호라이즌’에서 소개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맨체스터대 연구팀이 시중에서 팔리는 다양한 종류의 노화방지 화장품의 효능을 시험한 결과 이 제품이 수십만 원짜리 유명 브랜드 제품을 물리치고 최고의 효과를 나타냈다고 공개한 것이다. 방송 직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매장에서는 1시간 30분 만에 900명이 몰려 한 개씩 사간 뒤 재고가 바닥났고, 경매사이트인 이베이에서는 값이 100파운드까지 뛰었다. 이 화장품에 대한 열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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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성형외과와 피부과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형을 통해서라도 회춘하고 싶은 중년들의 욕망을 표현한 일러스트. |
소비자 환상 자극 상술은 경계해야
지난해 일본의 종합마케팅비즈니스 후지경제가 낸 조사보고서 ‘노화케어 개발트렌드 데이터 2006~2007’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따르면 일본 소비자의 항노화 및 항스트레스에 대한 의식은 매년 높아지고 있으며 예방과 조기 대책에 대한 노화케어 세대의 저연령화가 진행되고 시장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콜라겐 화장품은 2005년 대비 112%(1256억 엔), 콜라겐 건강식품은 141%(225억 엔), 체내에서 강력한 항산화작용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스타키산틴을 이용한 화장품은 전년 대비 525%(2100억 엔), 아스타키산틴을 활용한 건강식품은 200%(400억 엔)의 성장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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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에서 피부탄력을 높이는 레이저 시술을 받고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 |
LG경제연구원은 2005년 펴낸 ‘2010 대한민국 트렌드’에서 성장 전망이 밝은 분야 중 하나로 안티에이징 산업을 꼽았다. LG경제연구원 고은지 선임연구원은 “이미 2000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해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2025년에는 20%, 2050년에는 30%를 넘는 초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데다 건강 문제에 매우 민감한 고학력 베이비 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고령 인구에 편입되고 젊은 세대 또한 노화 방지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안티에이징 산업의 성장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 연구원은 또 “바이오테크 등 관련 기술의 발달은 빠른 시일 내에 혁신적 안티에이징 제품의 개발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이며 의약품의 경우 만약 노화를 일으키는 구체적인 원인이 규명되고, 직접적 효능을 지닌 혁신적인 제품이 등장하면 현재 주류를 이루는 보조적 수단의 제품들을 단번에 제압해 안티에이징 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티에이징 산업에 불황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거스를 수 없는 욕망이 바로 안티에이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소비자의 환상을 자극하는 마케팅 수단이나 얄팍한 상술은 경계해야 한다. 노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과용이나 맹신은 ‘독’이 되기 때문이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